후배 아나운서 한 명이 새로운 직장을 구해 서울로 가겠단다.

따뜻한 차를 마시며 축하 인사를 건네고

사무실 책상에 앉아  깊은 생각에 빠진다.

업무조정 때문이다.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프로그램을 담당했기에

한 사람만 빠져도 많은 변화가 있어야 한다.

시간대 별 , 프로그램 별로 배정을 달리 해야 한다.

아나운서를 새로 뽑는다 해도

짧게는 2달, 길게는 6달 동안 임시로 진행해야 하니

하루라도 미룰 수 없다.

1년에 1-2번은 겪는 일이지만

이번에는 더 급하다 .

후배가 바로 새 직장으로 출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는 사람을 기쁘게 보내야 한다.

볼멘소리도 못하니 정말 답답하다.

결국 뾰족한 수가 없다.

기존 진행자들의 시간과 매체를 고려하여 배정해야 한다.


팝 전문 방송이 나에게 맡겨진다.

프로그램의 변화가 전혀 없는 가운데

프로그램 진행만 바뀐 것이다.

물론 선곡을 포함한 방송 전체를 혼자 해야 한다.


문제는 시간이다.

오전에 방송이 이어진다.

준비한 표준 FM의 ‘여성시대’가 끝나면

바로 음악FM 스튜디오로 옮겨서 1 시간 방송을 해야 한다.

오전 9시 30분 이전에 미리 준비를 해 놓고

여성시대에 들어가야 한다.


radio3-11.gif 


이 음악 방송이 끝나면 다시 바로 정오뉴스를 해야 한다.

마지막 음악을 걸어 놓고 4층에서 5층으로 올라와

뉴스를 챙겨 바로 4층 뉴스 룸으로 내려간다.

정오 뉴스 원고가 뉴스 시간에 임박해 나오니

읽어 볼 틈도 거의 없다.

가끔 더듬거릴 때가 있다.

그냥 넘어갈 수는 없으니 꼭 정정해야 한다.

마음 속에는 청취자 여러분께 죄송한 생각이 늘 자리하고

스스로에게는 질책을 수 없이 한다.


한 숨을 돌리고 식사를 하면 수시로 녹음이 이어지고

라디오 뉴스가 기다린다.

5시 5분을 알리고 올라오면

바로 텔레비전 저녁 뉴스를 준비해야 한다.

옷을 바꿔 입고 분장을 하고 원고를 정리하여 뉴스를 끝내면

정말 하루의 방송이 마무리 된다.

이 시간 이후는 방송에서 벗어나지만

긴장이 풀어져 늘어지니 아침의 내가 아니다.

잠시 눈을 감고 분장실에 앉아  하루를 돌아본다.

방송인이 방송을 많이 하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라는데, 정말 그런 것일까?

나 자신도  대답을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다.


저녁 7시쯤 다시 사무실로 올라와

그날의 방송을 생각해 본다.

큰 실수 없이 한 것에 안도를 해야 하나

또 하루를 보낸 것에 감사를 해야 하나

쉽게 마음이 열리질 않는다.


한 방송인이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게

결코 바람직한 게 아니다.

아무리 최선을 다한다 하더라도
모두 소화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회사 홈페이지에 간혹 올라오는

누리꾼들의 의견에서도 지적되는 내용이다.


“ 꼭 그 아나운서가 진행해야 하나”

“ 그 사람 잘 못한다, 친구도 그 보다는 잘 하겠다”

“ 청취자들이 줄어들겠다”

“ 경제도 어려운데 외부인과 나눠서 진행하자”


어떤 때는 얼굴이 화끈거리지만

소중한 가족들의 고견이니 여러 번 읽어 본다.

그리고 감사의 마음을 담아 답을 하기도 한다.


요즘 늘 생각하는 게 있다.

빨리 여러 상황이 좋아져 후배들을 자주 뽑아서

정말로 생기 있고 멋진 방송을 하게 해서

방송의 품격도 높이고 회사의 이미지도 높이고 싶다.


그러나 세월은 멈추지 않고 흘러 간다.

좋은 소식도 들리지 않는다.
다음에는 어디로 가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