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봄날 오후, 사무실 의자를 돌려 창밖을 본다.

따뜻한 볕이 얼굴에 닿는다.

눈이 부셔 바로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눈을 밖에 있는 동산의 진달레 꽃에 맞춘다.

어제보다 꽃이 커졌다. 색도 진해졌다.

손에 든 커피 향도 봄을 맞나 보다.

칸막이가 돼 있는 책상 앞에서 구수함을 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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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산세베리아, 진달레, 소나무, 커피, 까치, 해님 그리고 나!

무슨 인연일까? 그냥 보고 있으면 좋다.

아무 이유없이 말이다.

잠시 하늘을 보고 마음을 비우는 이 시간!

왠지 오늘은 마음 속에 뭔가 자꾸 내려앉는다.

인연의 끈들이 이어진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일, 무대가 병원이다.

한 후배 아나운서가 큰 교통사고로 병원에 있다는 연락을 받은 시각은

오전 6시 쯤이었다.

아침 뉴스를 할 수 없다는 말만 전해 듣고

급하게 집을 나와 방송사로 향했다.

다행이 회사가 멀지 않아  방송 사고는 막을 수 있어

기분은 좋지 않았지만 한숨은 돌렸다.

뉴스가 끝나고 좀 있으니 다시 연락이 온다.

입원한 후배가 중상이란다.


바로 병원에 달려가니 병원에서 나를 마무란다.

보호자가 없어 큰 조처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찌하겠는가, 수술동의서에 서명을 하니 그때부터 보호자가 됐다.

응급실에서 병실, 다른 병원으로

부모님이 놀랄까봐 연락도 늦게 돼서 보호자 역할은 길어졌다.

지금은 다른 곳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다는데

연락이 없다. 아프지는 않은지, 그때를 잊었는지

그렇게 끝난 인연인가!


한 후배가 이사 오던 날 비가 내렸다.

집을 회사에서 좀 먼 곳에 얻었다.

이삿짐을 날라야 하는데 사람이 없단다.

후배를 맞는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가니 후배 어머니가 맞아 주셨다.

비를 맞으며 이사를 마치고 동료와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물론 아나운서와 방송 그리고 인간관계까지 얘기 꽃을 피웠다.

그로부터 2년

누군가 “그 후배가 결혼하는데 바로 그만 둔다”는 말을 전한다.

놀라 확인하니 죄송하단다.

늘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마무리가 급하다.

들리는 말로는 모든 상황이 급했단다.

그것으로 끝이다.


눈이 많이 내린 날 아침

아침 방송을 하러 일찍 출근했다.

아침뉴스를 끝내고 사무실로 들어서는 순간 급한 전화연락이 왔다.

텔레비전 뉴스 앵커가 분장하러 오지 않았단다.

시간이 좀 있어 여기저기 긴급하게 연락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

급한 마음에 사는 아파트로 찾아가기로 했다.

회사 가까이에 있어 옷을 챙겨 입고 뛰다시피 해

아파트 문을 두드렸으나 반응이 없다.

일찍부터 남자가 찾아와 소란스럽게 문을 두두리니 체면이 말이 아니다.

얼굴을 알아보고 무슨 일이냐고 묻고 대부분 들어갔지만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하는 주민도 있었다.


방법은 한 가지 남았다.

급하게 119에 전화했다.

분명이 집에 있을텐데 인기척이 없으니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다.

눈이 오며 추운 날 구급대원들이 도착해

베란다 쪽으로 밧줄을 타고 들어간다.

그러나 아무도 없었다.

정중하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하고 회사로 돌아왔다.

앵커를 바꿀 수밖에 없다.

손을 비비며 다른 후배에게 전화를 하려는데 전화가 온다.

바로 찾는 그 앵커였다.

지금도 겨울 아침 정말 여러 사람을 힘들게 했던 그 이유를 모른다.

묻고 싶지도 않다. 


언제부턴가 지역 방송사 여자 아나운서들을 연봉계약직으로 채용하면서

다른 사람을 속이고 눈물로 보내는 일이 많아졌다.

계약기간이 끝나면 대부분 그만둬야 하기 때문에 겪는 일이다.

비정규직인 여자 후배아나운서들과의 애닯은 사연이다.

훌륭한 후배를 맞아 1년 정도가 지나면 후배들이 고민을 털어 놓는다.

방송에 전념하는 것이 아니라 남은 기간에 걱정에 대한 얘기다.

대개 다른 방송사에 시험을 보겠다는 내용이다.


나의 대답은 “그렇게 해라”다

이때부터 나의 고민도 시작된다.

방송에 투입되면 날마다 텔레비전 뉴스를 하고 라디오 방송도 진행하는데

시험 보는 날마다 휴가 처리를 해주어야 한다.

요즘은 방송사 시험을 평일에 보기 때문에  그렇다.


그렇다고 그대로 얘기할 수도 없다.

내가 바빠진다. 다른 부서 담당자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양해를 구한다.

물론 사실을 얘기할 수도 없다.

‘갑자기 아프다’, ‘누가 아프시다’, ‘집안에 잔치가 있다’, ‘친척이 돌아가셨다’ 등등

시험이 한 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어서

성적이 좋아 단계가 올라갈수록 고민도 깊어진다.

결국 최종 단계에 이르면 회사에 알려야 한다.

비공식으로 알리지만 어떻게 아는지 사내에 소문이 퍼진다.

그래서 결과가 좋든 나쁘든 회사를  떠나게 된다.

아무리 설득을 해도 뒷일을 감당하지 못해 눈물로 보내 준다.


“선배님 고맙습니다, 그래 꼭 성공해 훌륭한 아나운서가 돼 연락해라”

이말만 주고 받고 인연을 멀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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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후배가 다른 곳에서 열심히 일하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은 후에도

인연 속의 강한 끈은 나를 풀어주지 않는다.

그게 인생이고 인연인가 보다.